공무원이나 공공기관에서 일한다면 무조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책이 있습니다.
최병선 교수의 《정부규제론》입니다. 이 책은 한국 행정학과 공공정책학에서 규제 정책을 다루는 가장 기념비적인 기본서이자 바이블로 통합니다.
이 책은 단순히 “규제는 좋다/나쁜다”의 이분법을 넘어, 정부가 왜 규제를 도입하는지(이론적 배경), 규제가 왜 실패하는지(정치경제학적 속성), 그리고 이를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지를 방대하고 세밀하게 분석합니다.

1. 정부규제의 당위성과 ‘시장실패’
책의 전반부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고 규제를 도입해야 하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전통적인 경제학 관점에서의 시장실패(Market Failure) 교정이 핵심입니다.
- 독과점 및 불공정 거래: 독점 기업의 폐해를 막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규제.
- 외부효과: 환경오염처럼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행위를 억제(부의 외부효과)하거나, 반대로 사회에 이로운 행위를 장려(정의 외부효과)하는 규제.
- 공공재 공급 부족 및 정보의 비대칭성: 소비자가 제품이나 서비스의 정보를 제대로 알 수 없어 피해를 입는 상황(예: 의약품, 금융상품)을 방지하기 위한 정보 공개 규제.
2. 규제의 유형 분류 (가장 유용한 분석 틀)
최병선 교수는 규제의 성격에 따라 이를 명확하게 분류하는데, 이는 정책을 분석할 때 매우 유용한 도구입니다.
- 경제적 규제 (Economic Regulation): 특정 산업의 진입 장벽(면허, 허가)이나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규제입니다. 주로 본래의 취지와 달리 기득권 보호나 독과점을 심화시키는 부작용을 낳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 사회적 규제 (Social Regulation): 환경 보호, 산업 안전, 소비자 보호, 보건 등 삶의 질과 안전을 위한 규제입니다. 경제적 규제에 비해 현대 사회에서 그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 독과점 규제 (Antitrust): 시장의 경쟁 구조를 유지하기 위한 규제입니다.
3. ‘규제실패’와 규제의 정치경제학
이 책이 진정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시장실패뿐만 아니라, 이를 해결하려다 더 큰 문제를 만드는 규제실패(Regulatory Failure)의 원인을 날카롭게 파헤치기 때문입니다. 시카고 학파의 ‘포획 이론’과 제임스 윌슨(James Q. Wilson)의 규제 정치 모형을 한국적 상황에 접목해 설명합니다.
- 규제 포획 (Regulatory Capture):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하는 규제 당국(정부 부처)이 시간이 흐르면서 피규제 집단(이익단체나 대기업)의 논리에 설득당해, 결과적으로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게 되는 현상입니다.
- 윌슨의 규제 정치 모형 적용: 규제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과 편익이 어떻게 분산되고 집중되느냐에 따라 규제 형성 과정의 정치적 역학 관계가 달라진다고 봅니다.
- 예: 비용은 특정 기업에 집중되고 편익은 대중에게 분산되는 경우(사회적 규제), 기업들의 강한 반발과 로비가 일어남.
- 정부의 정보 부족 및 관료주의: 관료들이 현장 실정을 정확히 모른 채 경직된 규칙을 양산하거나, 부처의 권한을 유지·확대하기 위해 불필요한 규제를 존속시키는 경향을 비판합니다.
4. 규제개혁의 방향성
결론부에서 저자는 맹목적인 규제 완화가 아니라 ‘좋은 규제’를 만들기 위한 질적 개혁을 강조합니다.
- 수단 규제에서 성과 규제로: “이 장비를 반드시 써라”식의 투입·수단 통제 대신, “오염물질 배출량을 이 수준 이하로 맞춰라”라는 목표만 제시하고 달성 방식은 기업의 자율에 맡기는 방식입니다.
- 네거티브 규제(Negative System) 도입: “원칙 허용, 예외 금지”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신산업이 규제에 가로막히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 규제영향분석(RIA)의 내실화: 새로운 규제를 만들 때 그것이 가져올 경제적·사회적 비용과 편익을 사전에 객관적으로 따져보는 제도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철저하게 작동해야 함을 역설합니다.
요약하면: 최병선의 《정부규제론》은 “시장의 한계를 고치기 위해 도입된 정부 규제가, 관료 조직의 속성과 이익 집단의 정치적 역학 관계 때문에 오히려 시장을 왜곡하는 ‘규제 실패’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규제의 틀을 사후 통제에서 자율과 성과 중심으로 전면 개혁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