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하나가 시장을 얼마나 움츠러들게 하는가 (잘못된 규제 하나가 ‘스마트’를 가로막을 때)
법 하나가 시장을 어떻게 움츠러들게 만드는지 사례를 찾아보았다. 무대는 공항, 소재는 「정보통신공사업법」이었다.
스마트공항과 이상한 법 조항
공항이 스마트해질수록 안에 깔리는 정보통신설비(네트워크, 보안, 여객서비스 시스템 등)는 계속 늘어난다. 그런데 이 설비가 건축물 ‘안’에 설치되면 법적으로 건축사만 설계를 맡을 수 있다. 반면 같은 건물에 들어가는 전기설비나 소방설비는 각 분야 전문기술자가 설계한다.
이상하지 않은가. 정보통신 전문가가 있는데, 정보통신설비 설계는 정작 그 분야를 모르는 건축사만 할 수 있다니. 이 조항이 실제로 생긴 취지는 소비자(발주자) 보호였다. 전문성이 부족한 사업자로부터 국민을 지키자는 것. 그런데 현실에서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8년치 실적자료로 확인한 두 가지
국내 공항 운영기관의 정보통신공사 실적자료 8개년치를 모아 두 가지를 검증해봤다.
첫째, 이 규제 대상이 되면 발주자는 아예 설계용역을 발주하지 않으려 한다. 분석 결과 진입규제 대상일 경우, 정식으로 설계용역을 발주할 확률이 85%나 낮아졌다. 대신 발주자가 직접 대충 설계하거나, 물품 구매나 소프트웨어 사업으로 우회해버린다. 법이 지키려던 절차 자체가 무력화되는 셈이다.
둘째, 어쩔 수 없이 건축사가 설계를 맡으면 품질이 떨어진다. 건축사는 정보통신 전문성이 없다 보니 결국 제3자에게 하도급을 준다. 이 과정에서 실질적인 설계업무 수행능력과 설계 기간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줄어들었다. 좋은 설계도서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규제가 아무도 지키지 못한 역설
정리하면 이렇다. 이 진입규제는
- 전문성을 가진 생산자(정보통신 기술자)의 시장 진입을 막고
- 좋은 설계를 원하는 소비자(발주자)의 선택권도 빼앗는다
원래 “소비자를 지키자”고 만든 규제가, 소비자도 생산자도 지키지 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낡아버린 제도가 새로운 기술 환경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에 가깝다.
왜 이 이야기를 하는가
이 규제 완화는 이미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고, 감사원도 여러 차례 개선을 권고했다. 그런데도 기존 이해관계자들의 반발로 오랫동안 제자리걸음이다. 흔히 보는 규제개혁의 전형적인 교착 상태다.
‘제도와 성장’이라는 주제로 이 사례를 꺼낸 이유는, 이게 비단 공항이나 정보통신공사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대에 맞지 않는 진입장벽 하나가 특정 산업의 성장판을 닫아버리는 일은 어디에나 있다. 제도가 성장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될지, 성장을 막는 병목이 될지는 결국 그 제도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되묻는 데서 갈린다.
지금은 해당 법 조항이 개정(2023.7.18.)되어 진입규제가 다소 해소되었다.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사라지길 소망한다.
이 글은 석사 논문(정보통신공사업법에 따른 스마트공항 설계 사례 실증연구)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출처 : 정부규제가 사회기반시설공사품질에 미치는 영향 – 정보통신공사업법에 따른 스마트공항 설계 사례 중심으로 –